응급실에서 드디어 병명을 알아냈다
초음파를 보니 다리와 팬티선 있는 쪽 정맥에 피가 잘 안 통한다고 했다. 이유는 혈전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혈전이 뭔데요?" 하고 물으니 피떡이라고 얘기해주셨다. 정맥 안에 혈전이 생겨서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갑자기 혈전이라니 잘못 진단한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좀만 늦었으면 그 혈전이 폐로 갈 수도 있었는데 그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엥? 입원이라니... 나 이 병원도 처음이고 응급실 분위기가 너무 무섭고 싫었는데.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아니다. 우리 첫째가 날 기다리고 있어서 집에 가야 된다고 말했는데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멍해졌다. 그냥 응급실에 왔다가 금방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입원이라니. 그것도 위험할 수도 있는 병이라니. 너무 갑작스럽고 무섭기도 했다.
일단 다리는 왜 그랬는지 알게 됐다
그제야 왜 다리가 그렇게 아팠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누워 있으면 붓기가 조금씩 빠지고 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는데 일어서기만 하면 다리가 엄청 붓고 검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고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요며칠 계속 붓지 않은 발로 깽깽이를 뛰거나 손잡이나 뭔가에 의지하면서 붙잡고 다니지 않으면 서있을 수도 없었다.
임산부가... 그것도 유산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심하라고 해서 조심하다가 심부정맥혈전증이라고?! 암만 생각해도 말을 잘 들어서 병이 생긴 것 같아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둘째를 지키려고 최대한 안 움직이고 있었는데 왜 이런거지..
심부정맥혈전증이라는 처음 듣는 병
그때 응급실에서 들은 병명이 바로 심부정맥혈전증이었다. 처음엔 병 이름도 너무 낯설어서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남편이랑 둘이 신부정맥? 심부정맥? 혈전? 이러면서 두 번쯤 물어봤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고도 하는 병이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오래 앉아 있거나 좁은 곳에 오래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되면서 혈관 안에 혈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피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노폐물도 쌓이고 폐로 가면 폐색전증이 생기고 많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지도 않았는데 이런 병이 생겼다는 게 너무 이상했다. 아니,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황당했다. 조심하라고 해서 조심하고 있었고 둘째를 지키려고 최대한 안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러다 생긴 병이 심부정맥혈전증이라니! 그게 너무 억울했고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여기서 잠깐! 심부정맥혈전증이란?
심부정맥혈전증은 다리나 골반의 깊은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질환이다. 임신 중에는 혈전 위험이 평소보다 높아질 수 있고 혈전이 떨어져 나가 폐로 가면 폐색전증이 될 수 있어서 빨리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은 대개 한쪽 다리의 통증, 붓기, 압통, 피부색 변화처럼 나타난다.
출처: NHS - Deep vein thrombosis in pregnancy
출처: RCOG - Diagnosis and treatment of venous thrombosis in pregnancy and after birth
이런 설명을 그때 당시엔 차분히 이해할 정신이 없었다. 혈관외과 선생님께서 산모에게는 흔치 않은 경우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산모의 심부정맥혈전증은 사례가 별로 없긴 했다. 나중에 들으니 처음 의사 선생님이 이 병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레지던트도 하고 전문의도 하면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환자도 많이 봤는데 산모 중에서는 심부정맥혈전증 환자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 병을 바로 진단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거의 백만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경우처럼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까 무섭기도 했지만 그게 왜 나인가 한탄스럽기도 했고 왜 그렇게 날 둘러싸고 고민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때는 그런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 무섭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우리 남편이랑 첫째를 두고 내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둘째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그냥 응급실에 왔다가 금방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큰일 날 수도 있는 병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복잡해졌다.
난 입원을 하고 남편이 첫째를 데리러 갔다
남편은 입원 수속을 하고 날 입원시킨 후 첫째를 데리러 갔다. 이미 밤 9시쯤 되었고 첫째를 맡긴 아이 친구 엄마가 아이는 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여리고 상처도 잘 받고 걱정도 많은 첫째가 엄마가 병이 걸려 입원하고 못 간다는 걸 알면 엄청 놀라서 많이 울 텐데 나도 계속 눈물이 났다.
남편 말로는 첫째가 많이 놀랐을 것 같아 감자튀김도 사 먹이고 기분을 풀어주면서 집에 가서 재웠다고 했다. 그래도 역시나 울음은 빼놓지 않았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첫째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입원을 해서 병실에서 휴대폰만 붙잡고 있고 첫째는 갑자기 엄마 없이 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니 미안하고 걱정되고 마음이 복잡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힘들고 마음도 복잡할 텐데 밤늦게까지 날 안정시키려고 노력해줬다. 내일 출근하면서 아이까지 케어하려면 많이 힘들 텐데 나 한 사람 아파서 여러 사람 고생인 것 같았다. 마음도 복잡하고 다리도 너무 불편하고 자리도 너무 불편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이날은 정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겼다. 둘째를 지키려고 쉬고 있었는데 가는 병원마다 원인을 모른다고 하지, 응급실에선 혈전이 생겼으니 당장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지, 첫째는 갑작스럽게 다른 분께 맡겨놨지. 남편은 나랑 첫째 사이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럽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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